인테리어에 대한 애정이라면 남부럽지 않은 부부가 있다. 수십 장의 시안과 도면을 그리며 셀프 레노베이션으로 완성한 세 식구의 집은 가족의 개성을 대변하는 보금자리이자 행복한 결과물이었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인 홈 오피스 공간. 방 하나를 유리로 마감해 이색적인 공간으로 완성했다.
온라인 쇼핑몰 럭스위즈를 운영하는 정희주 실장 부부가 셀프 레노베이션한 집을 찾았다. 그들은 이 집으로 이사한 지 1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고 고백했다. 공사 기간은 2달 남짓 걸렸지만 막상 공사를 시작하니 예상보다 일은 더 커졌고 한동안은 집에 아무것도 두지 못하는 등 인내의 시간을 보냈다며 웃었다. 패션 분야의 일을 하고 있지만 촬영을 위한 스튜디오를 직접 꾸미고 인테리어에 관심도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에 애착이 생겼다는 정희주 실장. “혼자 살 때는 물론 처음 신혼집을 얻었을 때도 집을 꾸몄어요. 단순히 스타일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닥도 깔고, 벽도 칠하며 셀프 공사를 시작했죠. 물론 공사 자체는 전문 인력의 도움을 받았지만 전체적인 설계나 시공 계획은 우리 부부가 직접 해왔어요.” 신혼 때부터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던 부부는 중학생인 아들과 반려묘 미엘이 함께하는 오붓한 가족이 됐고 집에 대한 애정은 더욱 깊어졌다. 지금은 남편과 함께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지만 정희주 실장은 국내 유명 갤러리에 몸담있던 큐레이터였다. 갤러리처럼 과감하게 벽을 메우고 있는 그림 작품만 봐도 알 수 있듯 큐레이터였던 그녀의 취향이 집 안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도면을 구해서 최대한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진행했어요. 58평형의 넓은 집이지만 우리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구조나 스타일링이 필요했죠. 안방 욕실에는 세면대가 두 개 있어야 한다든가 방 하나를 터서 홈 오피스 공간을 만든 것처럼요. 가장 먼저 바닥의 난방 시스템이나 화장실 공사와 같은 기초적인 보수공사를 진행했고 이후에는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부분이 무엇일지 고민했어요.” 노만 코펜하겐의 놈 Norm 조명이 주렁주렁 매달린 다이닝 공간은 이 집의 백미다. 독특한 점은 원래 방이 있던 공간을 유리로 마감해 새로운 홈 오피스 공간을 만든 것. 일반 사무실에서나 적용할 법한 유리로 마감한 오피스 공간이 집 안을 더욱 이색적으로 만든다. “원래는 중학생인 아들이 컴퓨터를 할 수 있는 투명한 방이었어요. 방에 컴퓨터를 두지 않고 여기서 컴퓨터를 하도록 유도한 셈이죠. 그러다 보니 우리 부부도 옆에 앉아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온 가족의 작업 공간이 됐어요.” 홈 오피스 공간에는 긴 책상과 책장을 두었고 유리로 둘러싸여 외부와 어느 정도 분리되면서도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여행을 다녀오며 사온 디자인 체어 미니어처 컬렉션.
창가 쪽에 TV를 둔 독특한 거실 구조. 식탁에 앉아서도 TV를 편안하게 볼 수 있다.
주방 도구를 멋스럽게 걸어둔 부엌.
일자형이나 ㄱ 자, ㄷ 자 구조가 아닌 비정형으로 각이 진 부엌 구조도 재미있다. 셰프의 주방처럼 주방 도구를 고리에 달아 멋스럽게 연출했고 아일랜드 식탁을 두어 주방과 식탁이 놓인 다이닝 공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구매하는 시기가 늦어지더라도 마음에 드는 것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에요. 마음에 드는 밥솥을 찾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기존 밥솥을 베란다 쪽에 두고 지낼 만큼 시각적인 디자인에 예민한 편이죠. 그래서 무엇을 하나 사더라도 우리 집에 어울릴지 신중하게 고민해요.” 부엌에서 현관 쪽 복도로 이어지는 부분을 돌로 마감한 것도 그런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사무실 마감재로 사용했던 포천석이란 돌인데 마음에 들어서 집 안의 일부에도 적용했다. 공사 당일 두툼하고 무거운 돌을 자르고 붙이느라 많은 이들이 수고했지만 자연스럽게 굴곡진 돌 마감재를 붙인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라졌고 옆의 벽에 건 배병우 작가의 사진 작품과도 어우러져 상공간 같은 신선함을 안겨준다. 정희주 실장은 베란다를 확장한 창가 쪽에 TV를 두었는데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식상한 거실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희주 실장은 베란다를 확장한 이들이 대부분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고 그래서 과감하게 창가 쪽에 TV를 두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식탁에 앉아서도 TV를 편하게 볼 수 있고 일반적으로 아파트에서 TV를 놓는 공간으로 정한 ‘아트 월’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1 루밍에서 구입한 프린트를 액자로 만들어 거실 벽에 걸었다. 2 포천석으로 마감한 통로. 큐레이터였던 집주인은 벽에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곳곳에 걸어두었다.
1 아들 방 옆에 건 방인희 작가의 작품. 2 거실 벽에 설치한 yoy의 ‘블로우 blow’선반.
벽을 거울로 마감하고 간접조명을 설치한 부부 침실. 밤에 불을 켜면 작품과 조명이 은은하게 어우러진다.
침대 맞은편은 tv를 비롯한 수납이 가능한 가구로 짜넣었다.
아들 방도 확장 공사를 진행해서 더욱 널찍해졌다. 붙박이장이 있던 공간을 확장하고 카트 선수인 아들이 레이싱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도록 높이가 다른 공간을 별도로 만들었다. 또 침대 헤드보드도 수납장 겸 장식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제작해 좋아하는 소품을 올려두거나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아들 방문 앞에도 그렇거니와 모든 방에 숫자가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각자의 방마다 아들 생일, 결혼기념일, 게스트 화장실 옆에는 ‘시원’이란 뜻의 101을 붙였어요. 손님들이 와서 ‘여기 화장실이 어디야?’라고 물으면 101이 써 있는 곳이라고 말하기에도 편하고 재미도 있더라고요.” 큐레이터였던 정희주 실장은 집 안에 많은 미술 작품을 걸어두었다. 윤형근, 배병우, 유병훈 작가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특히 부부 침실에는 헤드보드 쪽 벽을 거울 소재로 마감하고 그림을 달아서 아래쪽에 간접조명을 설치했다. 부부는 해가 지면 간접조명만 켜고 지낼 정도로 그림과 어우러져 색다른 분위기가 난다고 귀띔했다.
집 안의 작은 부분에 대해서도 소소한 에피소드를 말할 수 있을 만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정희주 실장 부부는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집주인이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업체에 맡겨 최신 유행을 따를 수도 있었지만 부부는 가족에게 꼭 맞는 집을 만들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다. 손때가 묻은 도면과 시안을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 데는 집에 대한 부부의 애정과 수고스러움이 묻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에도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족의 집은 그렇게 완성됐다.
1 ‘시원’이란 뜻의 101 푯말을 붙인 게스트 화장실. 2 침대 헤드보드 쪽으로 선반을 짜서 수납을 해결한 만든 아들 방.
카트 선수인 아들을 위해 방에 레이싱 시뮬레이터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