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언덕길을 올라가면 아주 적당한 거리에서 남산을 한눈에 내다볼 수 있는 집이 나온다. 장순각 교수가 지은 집은 주거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소재의 조화와 풍부한 공간으로 심리적 지루함을 덜어냈다.
장순각 교수는 ‘기능이 형태를 이룬다’라는 대명제를 충실히 따르는 건축가다. 기능하지 않는 공간을 최소한으로 줄여 다른 부분에 할당할 수 있도록 작업한다. 또 기능 자체가 디자인이 되도록 하는데, 예를 들어 벽은 장식을 하지 않고 벽장 그 자체로 디자인이 될 수 있도록 해 기능이 디자인으로 보이게끔 한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예요. 일단 이 주택의 크기를 먼저 정했어요. 소파가 들어갈 자리와 그 앞으로 테이블이 들어갈 크기가 하나의 모 듈이 됐고, 그 옆으로 보조 주방이 붙어 있죠. 큰 박스들로 레고 놀이를 하듯 메인 주방과 아일랜드 사이의 크기와 2층 방의 크기를 먼저 정했어요. 그다음 1층과 2층 가운데에 남은 위, 아래 부분을 시원하게 뚫었죠. 기존의 2m 40cm라는 획일적인 층고가 아닌 다양한 층고도 특징이에요. 4m가 넘는 공간도 있고 보다 낮은 곳도 있어 다채로운 공간감을 느낄 수 있어요. 또 거실에서 테라스로 나가면 하늘까지 볼 수 있는 반 외부 공간도 존재하죠”라며 이 집의 구조를 설명했다.
남산 북쪽 방향의 수직 고도에 자리한 이 집은 대지가 넓지 않은 도심에 위치하다 보니 위로 쌓는 방법을 택했다. 수평과 비례감 그리고 적절한 균형감이 건물의 외관을 담당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기능을 담당하 는 요소가 있다는 것은 디자인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방향성이에 요. 블록처럼 위로 쌓고 보니 자연스레 테라스가 생겼죠. 밑의 층에서 보았을 때는 옥상으로, 위층에서는 테라스로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죠.” 그는 이렇게 기능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 집의 컨셉트는 거실에서부터 계단을 거쳐 옥상으로 가기까지의 건축적 산책이라 할 수 있다. 그 중간 중간 목재, 돌, 회벽 등 다양한 물성을 지니고 있는 재료로 전이 공간을 만들고, 옥상에 나갔을 때는 한눈에 들어오는 남산의 정원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 바로 이 집의 건축적 시나리오다. 이 집을 둘러싸고 있는 목재는 우리나라 집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진한 목재가 아닌 밝은 편백나무다. 흔히 백색 벽과 대비되기 위해 진한 월넛 컬러를 사용하지만, 가볍고 산뜻한 분위기를 위해 편백나무를 선택한 것. 밝은 톤의 목재로 자칫 심심해 보일 수 있는 부분은 붉은색 선반과 거실 TV 벽으로 컬러감을 부여했다. 넓고 높게 뚫린 천장을 채우는 마이클 아나스타시아데스의 조명은 공간 속 커다란 액세서리처럼 자리하고 있다. 집 안 곳곳을 둘러보니 독특한 소재가 눈에 들어왔다. “거실 전체의 분위기를 밝은 톤의 편백나무로 밝혔다면, 계단에는 또 다른 전이 공간을 주고 싶었어요. 집 안이 면과 선으로 칼같이 딱 떨어지는 것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자연적이고 러프한 느낌이 들었으면 했죠. 철로 만든 틀 안에 바닷물로 씻겨 동글동글해진 몽돌을 가득 넣어 디테일과 멋을 살렸고 계단 옆 벽에도 자연스러운 텍스처를 느낄 수 있도록 했어요.”
이 집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백미는 따로 있다. 바로 옥상정원. 남산타워 뷰는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지만 적정한 거리에서 봤을 때 가장 예쁘다. 그게 바로 이곳이었다. 교통은 불편할지라도 리버 뷰보다는 사계절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마운틴 뷰를 선호하는 장순각 교수는 결국에는 뷰가 이 집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고 말했다. 옥상 다음으로 또 하나 독특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엘리베이터다. 대개 우리 나라 거실에는 안마의자나 러닝머신처럼 분위기를 흐리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는 숨기고 싶은 물건을 처리해줄 지하 방을 만들었다. “원래는 원형 계단이 있었어요. 비용도 큰 차이가 없었고 나름의 위트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했죠.” 마지막으로 그는 개성과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혼자 사는 세대가 많아질수록 대로변에 있는 집보다는 조금 안 으로 들어오는 환경을 선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합 주택이긴 하지만 단독주택 느낌이 나는 집을 선호할 듯해요”라며 지금까지 아파트만 주목받았던 한국의 주거 문화가 점차 변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건축 개요
대지면적 568㎡
건축면적 144.52㎡
규모 지하 1층, 지상 4층
구조 철근 콘크리트 구조
외부 마감 큐블럭, 금속, 스터코 도장
내부 마감 바닥 – 라피텍, 이건마루 벽체 노출 콘크리트, M보드 / 천장 – 노출 콘크리트, 석고보드 위 천연 페인트(벤자민 무어)
건축 설계 장순각/이창만 · 승현기 제이이즈워킹 건축사무소 www.jiw.co.kr